[출처] SAP ERP 구루가 말하는 컨설턴트의 덕목은? | BLOTER.NET - 도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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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분야를 취재하다보면 뿌리의 중요성을 자주 느낀다. 기술들이 끊임없이 변화, 발전을 하다보니 새로운 기술들을 이해하고 따라가기 힘들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이럴 땐 한 발 물러서서 이 기술들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현재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지 천천히 되짚어보면 조금 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기술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특히 관련 시장을 읽궈낸 1세대들을 만났을 때는 그들의 경험과 쌓은 지식,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현덕훈 SAP코리아 전무를 너무 늦게 찾은 것은 기자로써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음을 고백한다.

현덕훈 전무는 국내 전사적자원관리(ERP) 분야의 산 증인으로 이 분야 구루(Guru)다. 그는 국내 최초 SAP 프로젝트인 삼성전자 반도체 국내영업 프로젝트의 프로젝트 매니저(PM)을 시작으로 삼성전기, 현대건설 등 국내 주요 SAP 프로젝트를 수행해 왔다. 또 실질적인 국내 1호 SAP 컨설턴트며 트러스트 컨설팅을 설립해 SAP 전문 컨설팅 회사의 장을 열었다.

지난 9월 SAP코리아에 합류해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현덕훈 전무는 “막상 SAP 내부에 들어오고 보니 또 배울 것들이 많네요. 현재 화두가 되고 있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위한 것들은 물론 자유무역이 일반화되면서 전세계 각국의 규제와 관련된 것들도 모두 솔루션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제 IT가 없으면 기업의 손발이 꽁꽁 묶이게 됩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더 많이 전파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라고 밝혔다. 배움을 게을리할 수 없는 ‘컨설턴트’의 길을 선택한 후 현재까지 견지해 온 태도가 묻어난다.

그가 가진 컨설턴트에 대한 정의 때문인 것 같다.

그는 컨설턴트에 대해 “고객이 나에게 몇시냐고 물었을 때 시계를 찾아서 시간을 알려주는 사람이죠”라면서 “자신이 다 알아서 답변을 하는 게 아니죠. 현장에서 바로 답변을 못하면 알아보고, 또 알아봐서 해답을 찾아 고객에게 제공해야죠. 열심히 스스로 공부해서 찾아서 알려주는 게 컨설턴트고 선생님이라고 봅니다”라고 말했다.

ERP 컨설턴트는 무엇을 하는 지, 어떻게 자기계발을 하고 있는 지 등 다양한 질문을 던졌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답변은 향후 ERP 컨설턴트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선배로서의 조언 부분이었다. 현덕훈 전무도 처음 컨설턴트라는 말을 쓸 때 쑥쓰러워했다고 한다.

지금은 아주 젊은이들도 다들 컨설턴트로 나서고 있는 데 80년대 말까지는 한 산업 분야에서 30여년 경험을 축적한 머리 허연 이들이 컨설턴트로 불렸다고 한다. 당시엔 산업화에 앞섰던 일본의 호호백발 전문가들이 국내 기업들의 요청으로 많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었는데 각 산업에 대한 이해가 출중한, 말 그대로 컨설턴트들이었다고.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인성이라고 봅니다. 항상 고객 입장에서 생각하고 모든 것을 동원해 해결하려는 자세, 약속을 지키고 신뢰 관계를 쌓는 것이죠. 그 다음이 프로페셔널리즘입니다. 최고의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에서 어떻게 일하는 지에 대해 알아둬야 합니다. 그 다음이 SAP 제품에 대한 기술과 지식, 경험이지요”라고 밝혔다.

기자는 현덕훈 전무가 꼽은 것과는 정반대로 생각했었다. IT 분야에서 10년이나 일했는 데도 아직 멀었다. 이제 10년 일했으니 아직 혜안을 가질 나이는 아니라고 애써 자위했지만 앞으로 취재원을 만날 때 반듯한 태도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말도 줄이고.

ERP 시장의 산 증인인 만큼 기존에 기자가 가졌던 SAP에 대한 선입견과 컨선턴트에 대한 궁금증을 물었다. 우선은 프로젝트 구축 방식이었고, 두번째는 ERP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성공한 고객 못지않게 실패한 고객들도 많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ERP는 전산업에 적용되는 데 어떻게 전 산업을 이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국내 ERP 프로젝트는 단위 사업부에 우선 적용해 보고 전사적으로 확대하는 방식과 한꺼번에 모두 진행하는 ‘빅뱅’ 방식으로 진행된다. SAP는 빅뱅 방식보다는 단계적 적용 방식을 선호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들이 있었다. 오라클에 비해 고객들이 커스터마이징 하기에 까다롭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현덕훈 전무는 “기자분이 가지고 있는 선입견과는 반대로 SAP는 오히려 빅뱅 방식에 맞게 설계돼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다만 국내 고객들이 전사적 프로젝트의 위험성 때문에 단계별로 적용한 후 전사적으로 확대하다는 설명이다. SAP는 오히려 빅뱅 방식이 프로젝트 기간도 훨씬 단축할 수 있고, 혁신의 성과도 더 빠르게 도출해 낼 수 있다고 전했다. 국내 사업부 뿐아니라 해외 지사들을 모두 연결할 때도 한꺼번에 하는 것이 비용도 절감되고, 경영에 대한 정보들을 투명하게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는 것.

그는 “하나의 데이터베이스에서 모든 정보가 담겨져 있으니 투명성은 높아지고 문제점들도 바로 확인해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라면서 “현대건설이 64개국, 580개 현장을 한꺼번에 통합했습니다. 글로벌 조직 구조를 SAP 제품들이 잘 소화할 수 있습니다. 일례로 제품코드를 생성해 바로 글로벌하게 적용할 수 있고죠. 단가도 플랜트코드를 붙여서 마스터데이터를 관리할 수 있습니다. 최근 많은 기업들이 글로벌 통합 ERP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이죠”라고 설명했다.

ERP 프로젝트 시 실패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가장 모범적인 성공 사레인 삼성전기의 예를 들어 역으로 설명했다.

삼성전기는 ERP 시스템을 도입한 후 기업 내 많은 데이터를 하나로 모아놓은데 그치지 않았다. 고객에게 제공한 제품에 대한 클레임이 들어오면 언제 출하된 제품인지, 언제 생산되고 어떤 자재들이 생산에 쓰여졌는 지 시스템 내에 있던 데이터들을 찾아 역추적했다. 품질이 안좋은 제품이 출하됐다가 다시 반품이 들어왔을 때 회사에 얼마의 손실이 발생하는 지 품질 비용을 추적한 것. 이 결과 연간 100억원이라는 비용이 소요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품질 관리를 철저히 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숨은 비용을 찾아내고 이후 이런 비용을 줄이기 위해 다시 현업 부서에서 혁신이 일어나도록 했다.

이와 관련해 현덕훈 전무는 “재무상태만 투명해진다고 회사가 투명해지는 건 아니죠. 운영의 투명성도 나타납니다. 어떤 문제점들이 숨어 있는 지 찾아내는 것이죠. 몰랐을 때 그냥 계속 넘어갑니다. 삼성전기는 200가지 혁신 과제를 선정해 계속해서 혁신하고 있죠”라고 말했다.

이런 사례 외에 그는 “막연하게 남들이 하니까 투자하는 곳들이 있고, 프로젝트 추진도 IT 팀 위주로 진행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프로젝트가 끝나면 그 팀을 해체해 버리죠. 단순히 운영하고 결산 작업만 하니까 혁신이 안 일어납니다”라고 밝혔다.

산업군에 대한 이해의 경우 그가 ERP 시장에 첫 발을 들여놓고 나서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는 “공부밖에 답이 없죠”라면서 “SAP 제품을 이해하기 위해 매일 매일 공부를 했고,  SAP에서 제공한 CD를 모두 봤죠. 또 산업의 이해를 위해서는 공인생산재고관리사(CPIM)와 관련한 원서 3권을 6개월간 읽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다음부터는 현업에 있는 분들과 대화를 해도 막힘이 없더라구요”라면서 웃었다.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이들의 공통점은 항상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이들이다.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현덕훈 전무는 “다들 취업이 어렵다고들 하는데 뚜렷한 목표들이 없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라면서 “국내 ERP 고객들이 많아보니 아직도 이를 잘 다루는 인재들은 바로 취업이 가능합니다. 대학에 들어가서 SAP 관련한 프로그래밍을 좀 배우고,  CPIM(공인생산재고관리사) 공부를 좀 하면 전 산업계를 잘 이해할 수 있어요. 그렇게 한 4년 하고 나와보십시오. 바로 취업됩니다. 그것도 아주 좋은 조건으로요”라고 조언했다.

현덕훈 전무는 SAP코리아에 들어와 다시 한번 새로운 분야에 대해 공부를 시작한다. 인터뷰를 끝내고 나오면서 기자의 머리속에  ‘學而時習之(학이 시습지) 不亦說乎(불역 열호아)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다음엔 또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 지 벌써부터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