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입사원 때부터 약 3년간 같은 실장님 밑에 있었다. 중간에 부서가 바뀌기도 했지만, 실장님은 바뀌지 않았다. 나는 넓은 분야에 걸쳐 깊은 지식을 갖추고, 또 평소 유머러스하기도 한 실장님을 존경하고 좋아했다. 그런 실장님에게 부서(실) 이동을 요청했다.

"알고리즘에 더 가까운 일을 하고 싶으니 다른 실로 보내 주세요. Front-end 실로 가고 싶어요."

실장님은 여러 가지 말씀을 해 주셨다.

조언으로 삼고 오래 기억하고 싶어 여기에 남겨 본다.
+ 은 실장님 말씀, - 는 내 생각.


+ 알고리즘에만 집중하는 것이 과연 좋을 지 생각 해 봐라. 프로그래머는 알고리즘, DB, 객체지향, 성능/설계를 종합적으로 경험하고 배우면서 나선형으로 발전한다. 알고리즘/자료구조는 사실 좁은 분야이고 간헐적으로 사용된다. 중요한 것은 다양하고 종합적인 능력이다.
- 아마도 웹 솔루션을 운영하는 우리 회사에서 성장한다는 가정 하에 한 말씀인 듯..

+ 3년 간 무엇을 배웠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스스로 돌아보고, 개발자로서의 커리어를 어떻게 발전시키려고 하는 것인 지 생각 해 봐라. 3년 하고 질려서 가는 것은 아닌가? 다 배운것도 아니잖아? 정말 부서를 옮기면 발전할 수 있어? 지금 위치에서 더 배우고, 발전해야 하는 거 아니야?
- 다 배웠냐는 말씀에 뜨끔했다. 하지만, 다 배울 수 있겠는가. 배움에 끝이 없는데...
- 사실 지금 돌아보면 back-end 중에서도 RDB 에 가까운 업무를 주로 했던 기존의 payment 개발 영역에서 front-end 로 가는 것이 커리어에 좋다고 확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나의 경험과 연결하여 나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길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언젠가 나의 사업을 하거나, 아니면 스타트업에 참여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넓은 시야를 지닌 임원이 되고 싶다. 그런 점에서는 back-end 와 front-end 경험을 모두 가진 full stack 개발자가 되려는 노력이 의미 있을 것이다. 이 회사에서 정년을 채우거나 다른 대기업으로 이직하려는 것이 목표라면 payment 에서 front-end 로 가는 것은 낭비겠지.
- 나를 잡으시는 듯한 뉘앙스는 솔직히 기분 좋았다.

+ 지금 front-end 실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인력은 모바일 개발자이다. Front-end 로 가겠다면서 알고리즘을 강조하는 것이 좋지는 않아보인다. 그리고 front-end 개발자들은 사소한 것도 꼼꼼하게 처리하는 데서 가치를 창출 해 내는 사람들이다. 브라우저 호환성, 네트워크 등을 잘 다룰 수 있어야 하고, 어찌 보면 사소하고 궂은 일일 수 있다는 것을 잘 이해 해야 한다.
- 지금 보면 front-end 로 가겠다면서 알고리즘을 하겠다는건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였다. 나는 알고리즘이 아니라 '코딩'을 많이 하고 싶다고 얘기 했어야 한다. 또는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다고 하던가.


더해서, 우리 회사 payment 는 변화가 없어 답답하다는, 다소 당돌한(?) 불만도 이야기 했다. 그리고 실장님의 대답은...

+ 새로운 시도가 실패한다면 해결방법은 두가지다. 하나는 말을 잘해서 관계자들을 모두 설득 한 다음, 일을 추진 해 나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혼자 만들어서 보여주는 것이다. 나도 이렇게 컸다. 나는 만들어서 보여주었다. 너는 실증 한 적이 있었느냐. 개발자가 주장만 하고 실증은 하지 않는다면 front-end 실에 가도 변화를 도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 또 뜨끔했다. 개발자는 청사진이 아닌 구체적 결과물을 내 놓는다는 점에서 기술직으로 인정받는 사람이다.
- 나는 청사진을 제시 해 보고, 설득이 잘 안되면 '그래, 내 회사도 아니고... 여기선 아직 막내인데 뭐 더 설득을 하나. 포기하고 빨리 퇴근이나 하자.' 라고 생각하며 더 추진 하지 않았다. 어느 조직에 있든, 이건 앞으로 지양해야 할 자세이다. 기존 구성원들이 일하는 방법을 변화 시키고 싶었다면 조직에 정말 필요한 것만을 건의하고, 온 힘을 다해 추진하는 자세를 갖췄어야 했다.


결국 회사는 나의 의견을 반영 해 주었고, 나는 front-end 실로 가게 되었다.
사실 기존 부서에 남는 것이 좋은 선택은 아니었을까. 정답은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난 시간을 반성하고, 부족한 점이 있었다면 앞으로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겠지.

이 글은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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